남아프리카 공화국군
1. 개요
South African National Defence Force(SANDF).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군대.
2. 상세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군대. 1910년 영국의 주도하에 설립된 '남아프리카 연방'의 군대였던 남아프리카 방위군(South African Defence Force / SADF)이 그 전신으로, 남아프리카 방위군은 1957년에 창군되었다. 남아프리카 연방이 1960년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바뀐 후에도 남아프리카 방위군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다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폐지된 이후인 1994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아프리카 국가 중에선 경제 사정이 괜찮은 나라라서 노후화된 AK-47이나 HK G3, FN FAL 같은 구식소총을 사용하는 타 국가와는 다르게 군의 현대화가 비교적 잘 되어있다. 미군의 평가에 의하면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여단급 작전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1] 특히 대부분의 무장들은 자체 개발산인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의 특성상 유럽이나 미국, 아시아와는 다른 교범과 군사체계가 필요한 것도 이유이지만 진짜 원인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자 외산 물건들을 수입해올 수 없게 되어서 자체적으로 개발해서 쓴게 많기 때문.
특히 지뢰에 대응하는 여러가지 수단이 많이 발달해있는데 게릴라들이 즐겨쓰는 지뢰에도 버틸 수 있는 라텔 장갑차를 개발하기도 했다. 미군도 이라크에서 IED 때문에 사서 쓸 정도였다고 한다.
이것저것 만들어서 수출 시장에도 내놓는 중인데, 큰 재미는 못보고 있다. 성능은 확실하지만 '''실험 정신이 너무 강한 물건이 대부분'''이기 때문.[2] 스트라이커 샷건은 '''리볼버형 샷건'''이란 컨셉 자체도 독특하고, 성능도 그에 걸맞게 독특한 것으로 유명하다.
돌격소총 또한 특이하게 '''이스라엘'''의 영향이 많이 녹아났는데, 주력으로 사용하던 제식 소총인 R 시리즈 소총들은 전부 다 갈릴의 현지화 버전이다. 물론 갈릴 특유의 빌어먹을 무게 문제는 여전하긴 했지만 국토는 넓고 군인 수는 별로 많지 않아서 기계화가 굉장히 잘 이루어져 있는 관계로 보병이 걸어다닐 일이 별로 많지 않다보니 큰 문제 삼지는 않았었다.[3]
이후 이스라엘이 M16 소총의 쇼미더머니 파워에 압살당하자 갈릴에 관련된 모든 생산권, 저작권 등을 전부 남아공측에 팔아넘겼다. 남아공 측에서는 이 갈릴의 설계에 껍질만 전신 플라스틱 재질의 불펍 껍데기를 씌움으로서 '무게 문제가 해결된 갈릴'인 CR-21을 탄생시켰다. 원본 갈릴이 AK 시리즈를 참조한 것을 감안하면 CR-21 역시 안정성은 확실하지만, '''확장성이 너무 떨어지는 독특한 디자인''' 때문에...
또한 제식 대물 저격총 NTW-20의 경우 20mm 탄환을 사용하는 '''조준경 달린 핸드캐넌''' 소리를 들을정도로 사기적인 위력을 자랑하지만, 위력을 위해 기동성을 과감히 포기해버리고나니 더럽게 무거운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엔간한 저격수는 들고 다닐 엄두조차 안나는 물건이란 뜻. 총열길이만해도 1000mm에 달해서 운반하려면 둘이 서로 분해해서 들고 다녀야한다.
또한 이스라엘에서 전수 받은 기술을 기반으로 요르단군의 기갑전력 현대화 사업에 참가하여 팔콘 무인 포탑 등을 개발하고 있기도 하다. 실험정신이 강해서 그렇지 결과물들은 적어도 밥값은 잘 한다. 상기한대로 '''미군'''이 라텔 장갑차를 써먹은 전력도 있고.
또한 남아공군의 높은 기계화율과 차량 승무원의 생존성을 중시하는 성격 등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과 다른 형태로 연관된다는 해석도 있다. 극심한 흑백차별로 인해 남아공군의 병력은 소수의 백인들만이 구성하게 되었고, 여기에 민간인 거주지에서 싸우다 보니 전투원이 직접적인 위협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 당연히 전투원의 생존성을 크게 고려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이 또한 이스라엘군의 성격과 유사하다. 그 반대가 대한민국 국군이다.[4][5]
의외로 핵무기도 보유한 전적이 있었다. 남아공의 핵개발 항목 참조. 아파르트헤이트로 국제적으로 완전고립된 상황에 국가의 존립을 보장하고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80년대에 총 6기의 핵탄두를 만들었다. 참고로 비슷한 처지의 이스라엘과 협력을 했는데 이스라엘의 도움을 받은 남아공의 데넬 사는 탄도미사일인 RSA 시리즈를 개발했다. 이후 넬슨 만델라의 석방과 함께 인종차별정책을 포기하면서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고 안보적 상황이 바뀌자 핵 보유는 무의미했기 때문에 1991년 핵 확산 금지 조약에 가입하고 이 핵무기들을 모두 전량 폐기했다.
여하튼 백인정권 당시 아파르트헤이트에 연루된 직접적인 당사자이다보니 이 당시에 일어난 학살사건이나 인권침해 문제에 당연히 많이 끼어들었고 백인이라 할지라도 동성애자일 경우에는 아예 치료(?)를 해서[6] 이성애자로 만들려고 해버렸고 그래서 그대로 동성을 사랑한다 싶으면 아예 이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시켰다. (혐오감 프로젝트)
3. 주요 인물
- 통수권자: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
- 국방장관: Nosiviwe Mapisa-Nqakula
- 참모총장: Solly Sho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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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참모총장인 린들 얌 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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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참모총장인 새뮤얼 흘로과네(Samuel Hlongwane) 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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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흑인 장성)
공군참모총장인 파비앙 음시망(Fabian Msimang) 중장. 현재 흑인 장성들은 아파르트헤이트가 실시되던 70년대나 80년대에 입대한 사람들이다.
4. 육군
5.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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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함으로는 발로우급 경비 초계함이 있다. 움콘토 함대공 미사일, 오토멜라라 76mm 함포, 35mm CIWS, 기관포, 슈퍼링스등을 탑재한다.
6. 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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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력은 사하라 이남에서 최고로 평가 받는 수준이다.[7] 주요 전투 전력은 그리펜C/D 26대, 루이발크 공격헬기 11대 이며 수송전력으로 C-130 수송기 9대, 퓨마 개량형인 오릭스 26대이다. 대통령 전용기는 B737을 사용하고있다.
한국전쟁 때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7. 관련 문서
[1] 물론 사하라 이북, 오일머니가 썩어넘치는 아랍권의 군대, 그리고 그 가운데 수에즈 운하와 나일강의 수자원 등을 단단하게 거머잡고 있는 '''이집트군''' 등을 비교대상으로 끌고 온다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2] 별로 유명한 물건들은 아니지만 몇개 소개해 보자면, 우지처럼 그립 부분에 탄창이 들어가는(외형도 우지를 억지로 길게 늘인 느낌의 물건) 펌프액션 산탄총인 MAG-7, 그립과 방아쇠가 총 측면에 달려있는 20mm 유탄발사기인 PAW-20 NEOPUP 같은 물건들이 '''제식 화기'''였다.[3] 반군들조차 테크니컬을 타고 다니는 곳이 중동 및 아프리카다. 중장비가 별로 없어 그렇지 그 외의 분야에서의 기계화는 생각보다 잘 돼 있으며 오히려 아시아 쪽 군대가 행군의 비중이 꽤나 높다.[4] 다만 이건 대한민국 국군이 장병의 목숨을 파리목숨으로 여긴다거나 하는 소리는 절대로 아니고, 전면전에서의 화력 우위와 병사들의 생존성을 동시에 모색하는거라고 보면 된다. 한국군은 서방세계 최대 전력을 자랑하는 포병을 구축해 아군 장병들이 직접 맞부딛혀 희생을 내기보다는 장거리에서 적을 일소하는 방침을 채택하고 있다. 허나 재정 문제를 이유로 전력화가 지지부진한데 인구감소가 뻔히 보임에도 복무가 어려운 인원도 끌어넣어 결국 군전력 저하를 초래하고 병사 개인에 대한 처우가 열악해 인권 문제가 되고 있다.[5] 정확히 말하면 원래 전쟁이나 무력충돌 상황에서는 인명 피해를 피할 수 없다. 즉, 군사적 계획안을 세울 때에는 (설령 그것이 도덕적 악일지라도) 전투원의 생명 자체를 소모되는 자원으로 다룰 수 밖에 없다는 것.(이는 전쟁 자체가 악, 잘해야 필요악일 수 밖에 없다는 본질적인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이스라엘의 경우 주변 적국에 비해 적은 인구수, 과거 남아공의 경우 극심한 흑인 차별로 인해 차별당하는 대상인 흑인들에게 무기를 쥐어줄 수 없고, 소수 백인만으로 군대를 편성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어 국가적으로 '전투원의 생명' 이라는 자원의 손실을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아주 부족했기에 다른 부분을 희생하더라도 전투원의 생존성이라는 자원의 소모를 줄이는 데 주력하는 노선을 선택한 것. 결국 남아공군/이스라엘군 노선이든 한국군 노선이든 어차피 병사의 목숨을 '전투행위시 소모되는 자원' 으로 보고 그 자원의 효율적 활용과 우선순위에 대한 판단이 달랐던 것 뿐이니 도덕적 원론에서는 한쪽이 낫다고 할 게 없다.[6] 말이 치료지 실상은 고문이나 마찬가지였다.[7] 아프리카 전체에서는 이집트에게 한참 밀린다.